최근에 이런 질문을 듣고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평소 제가 하는 데이터 공부 이야기를 했을 참이라, 데이터에 관심이 많다면 아예 전향할 생각은 없는지 궁금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작 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죠.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데이터 공부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요. 곧이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데이터 공부를 하는 건 이걸 업으로 삼고 싶기 때문이던가? 아니라면 왜 이렇게 데이터 공부를 하고 있을까? 나는 왜 데이터 공부를 하는 거지? 무엇보다, 나는 뭘 하고 싶은 거지?
프로덕트 매니저로 커리어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많은 시간을 들여 데이터 공부를 해왔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늘 데이터를 활용하며 일하고 싶어 했고, 그래서 동료 프로덕트 매니저, 프로덕트 디자이너분들과 함께 데이터 스터디도 꾸준히 해왔죠. 사내나 외부 강연이 있으면 들어보고 좋다는 책이 있다면 읽어봤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결국엔 뭘 할 건데?’ 하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운 점은 걱정스러웠어요. 뚜렷한 목적 없이 어쩌면 그저 불안감을 동력으로 ‘데이터가 중요하다고들 하니까’ 공부하고 있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만큼 분명히 짚어보고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마침 다니던 회사를 퇴사해서 몇 개월 재정비 시간을 갖기로 다짐했던 차였습니다. 프로덕트 매니저로서의 커리어를 되짚어 볼 때, 데이터를 좋아하고 공부하는 나의 마음은 무엇을 기반한 것인지, 커리어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같이 짚어보면 좋겠더군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위 질문들을 통해 스스로 짚어보고 답하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저와 비슷한 마음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 참고가 되길 바라면서 이 글을 발행합니다.
목차
- 나는 왜 데이터 공부를 하는 거지? 1-1. 임팩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1-2. 논리적인 접근 방식이 좋기 때문에
- 그동안 뭘 하고 싶었고 앞으로 뭘 하고 싶지? 2-1. 문제를 해결하고, 외부에 기여하는 것 2-2. 앞으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search & discovery 도메인에
- 나의 데이터 공부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3-1. 지금까지의 데이터 공부 3-2. 지속가능한 공부와 커리어
타고난 성격을 이야기하자면, 저는 외부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데이터는 그런 저에게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되어주었습니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여러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이때 주니어로서는 직관에 의존하기에 리스크가 있습니다. 하지만 데이터를 활용하면 협업자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데이터 공부를 합니다. 더 큰, 정확하고 발전적인 임팩트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요.
데이터 자체의 활용에 확장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데이터 파이프라인에 존재하는 데이터를 활용해서 수많은 의사결정의 근거로 삼을 수도 있고, 새로운 프로덕트와 비즈니스를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까요. 이전까지는 유저 행동 데이터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데이터 자체가 프로덕트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을 기점으로 AI나 BI툴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더 큰 임팩트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익히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임팩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건, 바꿔 말해 목표지향적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지독하게 목표지향적인 사람인만큼 데이터 공부가 필수적이었습니다. 배포 이후에는 어떤 임팩트를 만들어냈는지 분석해야 하고, 그 결과 만족감을 느끼려면 데이터를 볼 줄 알아야 했거든요. 그 분석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내가 어딘가에 이만큼 기여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동기부여가 되었어요. 만약 이번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여기에서 얻은 인사이트로 다음에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싶어 지기 때문에, 데이터 공부가 도움이 됐습니다.
앞서 데이터를 활용하면 협업자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었다 했지요. 그건 데이터가 논리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논리의 정의란 이렇습니다.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글을 씀에 있어서, 내용을 이치에 맞게 이끌어 가는 과정이나 원리. 철학적으로는, 참된 인식을 얻기 위해 사고(思考) 작용이 밟는 과정이나 형식을 뜻함.”
여러 의견이 공존하는 곳에서 효과적으로 협업하려면 반드시 논리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데이터가 있으면 짜임새 있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어 유용합니다. 더군다나 논리는 기분이 좋습니다. 알 수 없는 것 사이에서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을 찾아내고, 이해하기 쉽도록 재구성해 협업자를 설득했을 때의 만족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분이 좋았던 순간은 홈 개편에 따른 적합한 지표를 정의하고 결과 분석에서 데이터 근거를 확보한 순간이었네요. 반대로 데이터를 활용했음에도 만족스럽지 않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분석은 했지만 여러 내부 사정으로 인해 실제 액션은 그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해야 했었어요.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단순 분석에 그치기보다는 그에 따른 액션을 하고 성과를 만들었을 때가 가장 보람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학을 졸업해 진로를 결정할 때 저의 욕구는 ‘문제를 해결하고, 외부에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비즈니스 쪽으로 취업하고 싶었지만 관련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들 이제 막 시작하고 있는, 전망이 밝은 분야’로 취업 전략을 짰습니다. 그게 퍼포먼스 마케팅과 그로스해킹을 접한 계기였어요.
좋아 보여서 했지만 실제 경험해 보니 더 좋았습니다. 원래 공학 전공인 만큼 가설 기반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실험으로 검증하는 방식이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졌어요. 이때의 경험 덕분에 데이터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외부에 기여하고’ 싶어 졌습니다. 이에 빠르게 실험해 볼 수 있는 IT 서비스 쪽으로 마음을 정해 프로덕트 매니저가 되었어요.
지금까지는 해결하려는 문제가 무엇인가에 따라 관심사도 넓어졌습니다. 데이터 관점에서 보면 근무 초기에는 유저 행동 로그 데이터에 집중했고, 홈 개편을 담당하면서는 개인화 추천을 비롯한 AI에 관심을 가졌고, 서비스 합병 후 리뉴얼을 담당하게 되면서 서비스 DB와 백엔드 로직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이후에는 백오피스를 담당하면서 BI툴 설계와 데이터 파이프라인으로 관심이 이어졌습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데이터를 경험한 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학습하려고 했어요. 그 공부의 결과로 최근의 브런치 아티클을 발행하게 된 것이고요.
그중 어디에 관심이 있는가를 본다면, 개인화 추천과 검색 기술에 관심이 있어 search & discovery(이하 S&D) 도메인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S&D를 맡게 된다면 기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S&D와 ML의 중요도가 높은 회사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다 보면 기회가 닿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경험 위에 또 다른 경험을 더 쌓는 빌드업이 필요하고, 그 일환으로 공부와 정리하는 글을 쓰게 될 것 같아요.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커리어를 유지할 것인지도 생각해 보았을 때, 제 답은 ‘그렇다’였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저는 실제로 액션 하지 못하면 만족도가 떨어지는 편이에요. 따라서 지금처럼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할 때 제가 원하는 만큼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변 데이터 분석가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사이트 도출에서 나아가 실질적인 액션을 하고 싶어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전향하시는 분들이 꽤 계시기도 하고요.
결과적으로 ‘내가 데이터 공부를 하는 건 이걸 업으로 삼고 싶기 때문이던가?‘는 절반 정도 맞는 말이었습니다. 데이터 분석가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와 같은 데이터 직군으로 가려는 건 아니지만, ‘데이터 프로덕트를 이해하고 비즈니스 가치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프로덕트 매니저가 되고 싶어서’가 데이터 공부를 하는 주된 이유예요. 또, 데이터 공부를 하면 그만큼 제 강점(논리적인 접근 방식, 임팩트 & 목표 지향적인 성향)을 뾰족하게 다듬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해온 데이터 공부를 요약해서 나열해 본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적어보니 드는 생각은 ‘요즘은 생각보다 무리하지 않고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네요. 퇴사하기 전에는 업무로 바쁜 와중에 종종 무리했지만, 최근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양과 빈도로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회사를 다닐 때에는 매 순간 현실을 체감하다 보니 이상과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데이터 공부를 하고 역량을 키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퇴사하고 나서는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생기기도 했고 충분히 휴식을 챙겨야 지속가능하다는 경각심이 생긴 덕분으로 보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재미있게 하고 있으니 잘 된 일입니다.
글을 시작할 때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는 것은 위험한 것 같다고 말했는데요. 이때 목적이란 ‘생산적인 목적’이었어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를 동반하는 그런 목적이요. 그런데 생각정리를 하다 보니 결국 행복을 목적에 두면, 생산적인 목적이 없더라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요즘 파이썬(데이터 시각화) 공부를 하면 앉은자리에서 3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그만큼 집중해서 코딩을 하는데, 사실 이제 시작한 만큼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에러가 나서 한 시간 넘게 하나만 붙잡고 있기도 해요. 그런데 즐겁습니다. 무언가에 몰입해서 노력을 쏟고 그 결과 문제를 해결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만약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Chat GPT나 구글링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해서 즐겁습니다. 그러면 된 거 아닐까요? 전 분명히 행복했는데요!
데이터 공부를 꾸준히 해오면서 느끼는 것은, 불안을 동력 삼기 쉽다는 것입니다. 결국엔 나 좋으려고 하는 공부이고 커리어인데, 주객전도가 될 때가 많습니다. 불안감이 전부가 되면 불행해집니다. 더 이상 하기가 싫어지죠. 앞으로 저는 휴식을 충분히 취하면서 지속가능한 데이터 공부를 하고 행복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타고난 성격이 목표지향적이어도, 아무리 불안으로부터 많은 성취를 해왔다 해도요. 물론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계속 노력해 볼 겁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직업병일 수도 있고,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이 업계를 많이 선택하는 까닭일 수도 있을 거예요.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저와 비슷한 시행착오를 겪으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요. 그런 분들께 제 고민과 다짐이 담긴 이번 글이 참고 자료로 쓰이길 바라요.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